오늘은 유다의 인생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창세기는 5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7장에서 요셉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작스레 무 자르듯 중단되고 38장에서 유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39장에서 다시 요셉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요셉이 팔려간 후 37장과 38장 사이에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갑자기 잃은 아버지 야곱의 반응에 형제들은 “네가 팔자고 그래서…이거 어떡하냐?”며 유다를 책망했을 것입니다. 그들에 대한 배신감,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유다에게 있었을 것입니다. 창 38:1은 유다가 그 형제들을 떠나서 이방땅인 아울람으로 갔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의 고난과 불순종의 시작입니다.

그곳에서 유다는 자신의 원가족과는 상관없이 장가를 가서 아들 셋을 낳습니다. 그런데 다말과 결혼을 한 첫아들 엘이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합니다. 둘째 오난도 악하여 죽습니다. 똑똑한 척 머리를 쓴다는 것이 죄악의 시작입니다. 셋째도 죽게 될까 두려워 며느리 다말을 친정으로 돌려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날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갔는데 에나임 부근에 머물게 되고 시아버지인 유다가 왔다는 소식을 들은 다말은 창녀 복장을 하고 에나임에서 기다리다가 유다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에게서 화대 대신에 징표를 요구하고 도장, 끈, 지팡이를 받습니다. 훗날 다말이 창녀짓을 하여 임신을 하게 됐다는 소문을 들은 유다는 다말을 불태워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다말이 지니고 있던 징표를 본 유다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 (창 38:26)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셋째 아들인 셀라 역시 죽게 될까 두려워 다말에게 내어주지 않은 것이 죄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에서 절대절명의 고백이자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고백입니다. “하나님, 다말이 옳습니다. 제가 죄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고백입니다.

내게는 이런 고백이 있습니까? 남편과 아이들에게 “네 말이 나보다 옳다”라고 고백합니까? 유다의 고백은 성숙의 길로 가는 시작점입니다. 그후 유다는 온유하고 공감하는 희생의 인물이 됩니다. 요셉 앞에서, 아버지 앞에서 차분하게 얘기하며 설득하는 유다를 보십시오. 그는 자신이 아들을 잃어봤기에 아버지의 깊은 슬픔을 압니다. 어려운 고난의 시기는 공감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입니다.

훗날 야곱은 아들들을 모아 놓고 각각 예언을 해줍니다. 유다는 자신의 인생 앞에서 그 예언의 시간이 두려웠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요셉을 팔아먹은 얘기가 아니면 다말의 얘기가 나올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언을 달랐습니다.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창 49:8-12). 하나님은 다말을 통해 유다에게 두 아들들을 주셨고 이들을 통해 유다의 계열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에게 주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는 고백이 복음의 시작이며 나의 변화의 시작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믿음의 용사입니다. 이때 비로소 하나님은 우리를 쓰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백으로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수요누리가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

5/15/2019 그녀가 나보다 옳도다 (창38장, 49장, 김희진 전도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