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서 배워야할 것은 신앙 자세의 회복, 바로 ‘이 마지막 때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가’ 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현재 모습은 대부분 무너진 폐허들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 외에 모든 사도들은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걸 보고 우리는 두 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이 땅에서의 삶이 안락하고 평안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게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히시고 고난당할 때 제자들은 다들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두려움으로 숨어있던 그들이 돌아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바꾸어 놓았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교의 삶을 살았습니다. 제자들처럼 담대한 신앙 생활을 하려면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삶의 전환점이 되는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서 우리 역시 마지막 환난의 때에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세 부분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핍박 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7:17, 21:4).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흘리는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책망을 먼저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악해지고 타락한 교회에 주님께서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함이 사라진 교회와 성도들에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으시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 4:6-7). 일곱교회에 보내신 메세지들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보고 무너진 부분을 어떻게 회복할지 배워야 합니다.

계 5:8, 8:3, 8:4에서는 성도들이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천사들이 금대접과 금향로에 담는 ‘향’이라고 언급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믿을 때 우리는 현재의 환난과 핍박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배의 3요소는 말씀, 기도와 찬양입니다. 이 셋은 항상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서는 안됩니다. 완전한 예배의 회복이 바로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입니다. 완전한 예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 눈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예배 가운데 이것이 끊임없이 연습이 되고 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천국에서도 온전히 예배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세상의 환난과 핍박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계 9:6은 너무나 괴로워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7년 환난의 때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과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미혹은 여전합니다. 무엇이든지 늘 용서하시는 사랑의 하나님만 강조하는 사탄의 미혹을 조심하십시오.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십시오. 어린양의 신부로 혼인잔치에 들어갈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일곱 재앙을 맞이할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계 21:9-10). 이것이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전도는 교인수를 늘리기 위한 게 아닙니다. 우리가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계시록의 많은 상징들, 천국의 모습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마십시오. 그곳에 어떻게 가야할 지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한 영혼이라도 재앙 가운데 들어가지 않도록 불쌍한 마음으로 알려줘야 합니다.

우리가 있는 바로 이 곳에서 완전한 예배의 회복을 꿈꾸기 원합니다.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실 아버지에 대한 소망이 있기에 끊임없이 연습하고 훈련하며 세상의 핍박을 넘어서는 수요누리,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공동체가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10/30/2019 요한계시록 특강 2 (박용진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