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과 형편이 괜찮아 보이는데도 괴로워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의 대상은 바로 일그러진 자아상입니다. “너는 가치없어, 무능해, 바보야, 쓰레기야, 너 같은 건 살 필요가 없어” 등등의 판단, 정죄와 고소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죄를 하는 건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입니다. 문제는 마귀의 정죄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죽을 힘을 다해 그냥 버티면서 맘과 몸이 무너지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정죄와 고소를 하는 마귀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 주변 지인들의 모습으로 나타나기에 우리는 더욱 상처를 받고 헤어나오지 못 합니다. 이와 같은 마귀의 공격은 묵상을 할 대상이 아닙니다. 무조건 쫓아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고소의 뒤에 서있는 것이 마귀임을 깨닫는 순간 이미 승패는 결정납니다. 예수님이 마귀를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아들도 아끼지 않고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감히 누가 우릴 대적하겠습니까?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은혜로 모든 걸 주셨습니다. 우리가 상황 가운데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다시 연약해졌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변하지 않습니다. “너를 의롭다고 하신 분은 하나님이야. 흔들리지마. 마귀를 쫓아내라. 너는 내 딸이다”라는 약속은 변하지 않습니다. 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셔서 예수님께서 중보자로 날 위해 간구하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최고의 사역, 최고의 일은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젖 먹은 힘을 다해 기도하십시오. 제발 마귀의 정죄를 들으며 그냥 참고 견디려 하지 마십시오. 대적하여 쫓아내고 기도하십시오. 그렇게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하며 매달리십시오. 하나님의 보좌에 달려나가 기도하는데 목숨 거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무능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39절). 세상 다른 데는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아무 권세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잠깐만요, 하나님. 나중에 만나요. 지금은 잡지 마세요”라는 내 중심적인 생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 나오지 마십시오. 이 죄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게 됩니다. 내 생각을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수요누리가 되기를 기도하며 사도바울의 말씀을 우리의 고백으로 올려드립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0/16/2019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롬 8:31-39, 하신주 선교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