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 (히 3:12-19, 하신주 선교사님)

히브리서 저자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인 모세에게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모세보다도 예수님이 얼마나 더 뛰어나신 분인지 전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모세로 대변되는 율법이 내 자신의 힘, 내 행위로 거룩하다,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본성을 얘기한다면 예수님은 그리스도의 힘으로 사는 믿음, 즉 새생명을 알려주십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율법과 믿음의 싸움을 제대로 알고 이 차이를 제대로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본성이란 무엇입니까? 엡 2:1-3에서 보여주듯이 본성은 1) 허물과 죄로 인해 하나님께 대해 죽은 것입니다, 2) 이 세상의 풍속을 따릅니다, 3)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즉 불순종의 악한 영을 따릅니다, 4)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하며 육체의 욕망대로 살아갑니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에 의하면 ‘하나님을 떠나려는 악한 불신의 마음, 죄의 속임수로 완고해지는 마음, 반역, 불순종, 불신앙’과 같은 인간의 본성은 광야에서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절대로 고쳐서 개선되어질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십자가에서 가차없이 죽임을 당해야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본성은 굉장히 조건적입니다. 우리 자신의 코드에 따라서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 가치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성으로 인해 우리의 행함은 의가 되어서 인정받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결코 그리스도의 생명의 법이 아닙니다. 행위로, 율법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갈 5:4). 이걸 모르면 율법주의로 살아가면서도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늘의 신령한 은사를 누리고, 하나님을 위해 헌신한다고 하더라도 본성이 분리가 되지 않으면 어느새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본인 스스로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육을 광야에 버리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죽임을 당하게 할 수 있습니까? 먼저 1)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이 죽임을 당해야 함을, 본성과 새생명의 차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2) 분리시켜야 합니다. 3) 내버려야 합니다 (엡 4:31. 갈 4:30-31). 본성을 개선해보려고 노력하면 끝이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타협을 하지 않고 가차없이 내버리면 내 안에 기쁨과 화평과 오래참음의 열매가 맺힙니다. 어둠을 드러내서 꾸짖으면 빛이 임합니다. 우리가 본성과 분리가 안 되는 이유는 치유 받지 못한 상처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용서하려고 하는데 용납이 안 되는 이유는 억울함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상처의 치유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상처를 치유 받은 후에는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본성에 대한 애착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집어 던지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우리가 본성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마음에 사형 선고를 내리십시오 이를 위해 ‘살아있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처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굳게 잡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 이 마지막 때에는 더욱더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아직 ‘오늘’이라 일컬을 수 있는 그날 그날에 여러분 가운데 누구라도 죄의 속임수로 완고해지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십시오 (히 3:13).” 혼자서는 절대 설 수 없습니다. 수요 누리가 살아있는 공동체, 서로 벌거벗고 어둠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그래서 진리를 끝까지 굳게 붙잡고 함께 승리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