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9-24, 김희진 전도사님)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시던 예수님과 여인만이 우물가에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이 멸시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사마리아인들중에서도 도저히 같이 할 수 없었던 여인을 예수님은 선택하시고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조상 야곱’이라고 부르는 여인은 자신 역시 이스라엘인이라는 마음이 있었던 듯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유대인임을 즉시 알아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을 사람 취급하며 물을 달라고 하는 건 사실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여인은 예수님께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1:1로 문답하며 가르치십니다. 혹여나 사람들과 마주칠까 싶어 물을 길으러 오는 것조차 아픔인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생수 이야기를 하십니다 (10-15).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는 그 물을 어디서 구할지 여쭤봅니다. 예수님은 “남편을 데려오라”는 의아한 대답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남편’은 ‘우물물’만큼이나 아픈 상처입니다.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말이 맞다”라고 말씀하시고 그 속사정을 드러내시며 그 여인의 삶 가운데로, 사연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17-19). 여인의 속사정을 드러내시는 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여인은 이제 속사정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 신뢰가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신의 맘에 있던, “예배”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20). “우리는 사마리아에서 예배하는데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해야 합니까?”라고 장소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뜻밖에도 예배의 “시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믿으라. […]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지금이 바로 그 때다” (21-23). 지금 드리는게 예배입니다. 지금 드리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무엇입니까?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24). 영은 하나님이시고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내가 너와 얘기하는 이 순간이 예배이다. 이 예배는 계속될 것이다”라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 질문과 응답이 바로 예배입니다. 주님께 계속해서 질문하십시오. 예배자는 하나님과 계속 click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만남의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게 된 여인은 이후 완전히 바뀝니다. 예전에는 철갑옷을 입고서 자신의 수치스런 과거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9절을 보면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얘기할 수 있게 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 한 여인으로 인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아픔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치유되었고 이 여인을 살렸습니다. 또한 여인의 아픈 사연은 다른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아픔을 드러내시는 건 나를 살리시고 내 주변을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일상에서 늘 주님과 click되어 있는 수요 누리, 질문과 응답으로 예배를 드리는 수요 누리, 그래서 주님이 찾고 계시는 예배자로 서는 수요 누리가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