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여성예배

수요예배 요약 1/23/2019

(요 4:9-24, 김희진 전도사님)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 한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옵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시던 예수님과 여인만이 우물가에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유대인이 멸시하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런데 하필 사마리아인들중에서도 도저히 같이 할 수 없었던 여인을 예수님은 선택하시고 구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의 조상 야곱’이라고 부르는 여인은 자신 역시 이스라엘인이라는 마음이 있었던 듯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이 유대인임을 즉시 알아챘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하십니다. 유대인 남자가 사마리아 여인을 사람 취급하며 물을 달라고 하는 건 사실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이에 대해 여인은 예수님께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1:1로 문답하며 가르치십니다. 혹여나 사람들과 마주칠까 싶어 물을 길으러 오는 것조차 아픔인 이 여인에게 예수님은 생수 이야기를 하십니다 (10-15). 여인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는 그 물을 어디서 구할지 여쭤봅니다. 예수님은 “남편을 데려오라”는 의아한 대답을 하십니다. 그러나 이 여인에게 ‘남편’은 ‘우물물’만큼이나 아픈 상처입니다. 남편이 없다고 대답하는 여인에게 예수님은 “네 말이 맞다”라고 말씀하시고 그 속사정을 드러내시며 그 여인의 삶 가운데로, 사연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17-19). 여인의 속사정을 드러내시는 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과정입니다.
여인은 이제 속사정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 신뢰가 생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자신의 맘에 있던, “예배”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20). “우리는 사마리아에서 예배하는데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해야 합니까?”라고 장소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 예수님은 뜻밖에도 예배의 “시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내 말을 믿으라. […]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지금이 바로 그 때다” (21-23). 지금 드리는게 예배입니다. 지금 드리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배는 무엇입니까?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입니다 (24). 영은 하나님이시고 진리는 예수님이십니다. 내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는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는 자들입니다. “내가 너와 얘기하는 이 순간이 예배이다. 이 예배는 계속될 것이다”라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만남, 질문과 응답이 바로 예배입니다. 주님께 계속해서 질문하십시오. 예배자는 하나님과 계속 click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답을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만남의 예배를 통해 예수님이 메시야임을 알게 된 여인은 이후 완전히 바뀝니다. 예전에는 철갑옷을 입고서 자신의 수치스런 과거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9절을 보면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얘기할 수 있게 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 한 여인으로 인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파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아픔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치유되었고 이 여인을 살렸습니다. 또한 여인의 아픈 사연은 다른 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아픔을 드러내시는 건 나를 살리시고 내 주변을 살리시기 위함입니다. 일상에서 늘 주님과 click되어 있는 수요 누리, 질문과 응답으로 예배를 드리는 수요 누리, 그래서 주님이 찾고 계시는 예배자로 서는 수요 누리가 되기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글쓴이 admin,
수요 여성예배

수요예배 요약 01/16/2019

예수님의 믿음

(막 6:30-44, 마 27:20-25, 출 14:13-16, 하신주 선교사님)

오늘은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의 믿음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마 6:33을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제자들이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알아 차리고는 그보다 먼저 제자들의 도착지에 이르러 기다리고 있을 정도로 열정을 보입니다. 그러나 같은 사람들이 마 27:20-25에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선동에 휘말려서 예수님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하며 그 핏값을 자신과 자손들에게 물으라고 소리칩니다. 이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평범한 우리 안에 있는 악의 축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본질은 힘이 있는 자가 선동했을 때 약합니다. 선동에 넘어가서 그것이 의롭다고 생각하며 정작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 하고 취해 버립니다. 우리가 선동에 가장 취약할 때는 사회적, 영적으로 성공하고 있을 때입니다. 이때는 맘속에 교만함이 들어오기에 “그우리의 본질이 이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쫓아온 많은 사람들을 보시고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 같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막 6:34). 이것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며 행하신 오병이어의 기적

(막 6:38-41)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네 단계로 보여 주십니다.

1) 믿음은 문제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어둠인지 빛인지 분별하며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빵이 얼마나 있는지 가서 알아보라고 하셨습니다 (6:38). 문제를 제대로 아는 게 영적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지 않으면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 하고 나의 교만함으로 인해 문제가 있는데도 알지 못 합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아는 것만으로도 이미 문제의 50%는 해결됩니다.

2) 믿음은 문제를 제대로 내 손에 쥐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계셨습니다 (6:40). 그러나 문제 자체를 바라보고 묵상해서는 안 됩니다. 내 손에 문제를 쥐지만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6:40). 어떻게 하늘을 우러러 볼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능력 (내 문제는 하나님께 문제도 아니다. Nothing이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키신다. 세상 쾌락에 무너진 남편과 아이들도 하나님이 지키신다),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은 작은 걸 소중히 여기신다. 신실하시다)에 있기 때문입니다.

3) 하늘을 우러러 볼 때 문제는 작아집니다. 우리의 기도가 바뀝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이기에 예수님처럼 감사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6:40). 이 감사의 기도가 바로 마귀를 무너뜨리고 비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4) 믿음은 이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람들 앞에 떡을 갖다 놓으라고 하신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처럼 이미 믿음으로 믿기에 순종으로 행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출 14:15-16에서 보는 것처럼 모세는 지팡이를 들고 바다 위로 뻗어 물을 갈라야 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로 발을 내딛어야 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네 단계에서 어느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됩니다. 문제를 정확히 알고, 회피하지 않고 내 손에 쥐되 하늘을 우러러 보고, 이미 이루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 신실하심을 믿기에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행동으로 옮기는 수요누리, 이 네 단계를 통해 일상에서 늘 기적을 맛보는 수요누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글쓴이 admin,